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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 자유주의 사관의 정체 5

뉴라이트 친일교과서가  나오고, 한나라당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일본 우익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객관적인 입장에 있다고 생각되는 호주국립대학
태평양학 연구학부 동아시아학과의 맥코맥(McCormack) 교수의 글을 옮겨 봅니다(일본 자본주의 사관의 정체, 1997년 '창작과 비평' 98호, 1997)

1. 자유주의적 역사기술과 올바른 역사

2. 위안부의 도전: 끔찍한 성범죄의 나라
3. 사람과 운동
4. 이해와 해석을 위하여 
5. 결론

5. 결론

후지오까는 '토오꼬오 전범재판식 역사관'이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면서 일본에 강요한 것이며, 그후 일본이 수차례의 모욕을 당하게 된 근원이라고 보지만, 그것은 매우 모호한 평가이다. 사실 '좌익' 역시 우익맡큼이나 전범재판을 비판해왔고, 그 재판이 왜곡되어 왔다고 주장해왔다. 우선 죄가 패자에게만 있는 것처럼 가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 이것은 일본 밖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널리 받아들여진 비판인데 - 정치적인 이유로 몇가지 핵심적인 문제들, 예컨데 천황이라든가, 731부대, 위안부 문제 등을 조사대상에서 삭제하기로 한 결정이 재판을 왜곡시킨 것이다. 반세기 지난 지금 토오꼬오 전범재판 문제에 조명을 가할수록 이 점은 분명해 질 것이고, 그럴수록 이 논의는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에게서는 환영을 받겠지만 후지오까와 그의 동료들로서는 어찌 손댈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궁극적으로 전범재판의 문제는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만이 아니라, 거의 음모적인 미일합의에 의하여 어디서 책임을 은폐하고 회피하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점점 국경이 사라져가는 세계에서 국가감각이 실종된다든가, 국가 내의 세력균형을 보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었다고 개탄하는 것이야 세계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후지오까 등의 남다름은 이 문제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거센 주장을 굽히지 않을 정도로 전지구적인 경제대이며 20세기 성공신화의 주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굳이 비유하자면, 자신들이 정체모를 전지구적인 힘의 피해자가 되어가는 것을 깨닥게 된 산업사회의 도시대중이 갖고 있는 '원한의 정치학'에 가까울 것이나, 일본의 경우 경제적인 요인은 아주 작은 역할 밖에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후지오까를 추동하는 것은 국가권력이 축소되고 그 권위와 상징이 퇴락되고 해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하다. 후지오까가 유난히도 격렬하게 일본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자민당의 핵심파법들 같은 정치적 주류가 이미 입장을 바꾼 상황에서 자신들이 위축되고 고단한 소수로 전락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절망감 때문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이 글이 쓰여지고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이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가 되어버렸다 - 옮긴이가 첨부).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입장의 변화이지, 변화가 야기한 열광적인 반대는 아니다. 물론 이 열광적 반대도 지적 비일관성과 정서적 힘이 결합되어 막강한 효과를 내느니만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후지오까와 그의 동료들은 오랜 역사와 기억에 기인하는 일본과 이웃나라 간의 거리는 좁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이나 한국같은 나라의 반일 감정은 너무 깊어서 "우리가 아시아의 이웃나라들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역사관을 확립하고자 한다면 결국 우리가 무릎 꿇는 셈"이라는 것이다. 후지오까의 표현을 다시 직접 들어보자. "우리는 일본인이므로 무엇보다 일본 및 일본 국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부인하기 힘든 점은 일본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후지오까의 계획과 그가 일본정부에 촉구한 정책들이 만일 채택된다면 일본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 간의 친선관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뒷걸음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 자신들의 정당함과 편협한 국가적 자존심을 내세우며 날카롭게 이야기하려 든다면, 그리고 마치 전전의 도덕교과서처럼, 역사교육 대신 전통적인 덕목과 민족주의를 고양시키기 위해 지어낸 교훈적 이야기를 선별하여 주입하는 그런 교과서를 채택한다면, 일본은 이웃나라들과 맞서서 그 나라들의 역사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과 전쟁의 기억을 서술하는 한) '그릇된' 것이라고 비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아시아 지역에 끼칠 결과는 예측할 수 없으나 불안을 야기할 것임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 민족주의 감정의 이 20세기말 식 표출은 일본 민족주의의 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하나는 천황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으로, 이 둘은 민족정체성 안팎의 양 축이다. 이 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일은 일본에서는 금기시되어왔다. 민족적 긍지, 영예, 순결이 돋특하게 얽힌 일본 특유의 현상은 근본적으로 일본의 정체성을 일본적 자아의 정수 - 오염되지 않고 숭엄하며 제국적 본질-를 기반으로 구축해온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자기표현 방식에 기인한다. 일본이 침략국이나 '강간국'으로 표현되어 이런 본질이 더럽혀진다는 것은 정말로 이들에겐 끔찍한 일이다. 긍정적이고 순수한 일본의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이 새로운 시도가 이제 천황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가히 궁금한 일이다.

일본 민족주의자들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두려워서 표현하지 목하고 억누르거나 기껏해야 왜곡된 형태로 표현하는 문제, 즉 일본이 군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계속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이다. 이제 논의를 새로운 국면으로 끌어냈고, 특히 일본을 궁극적인 선으로 보는 무작정한 견해를 풀어놓고 그것에 새로운 위엄마저 부여한 마당이니, 앞으로 이러한 파급효과는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 후지오까의 왜곡되고 편협한 민족주의 구호 주창에 지지를 보내는 민족주의 단체들은 조만간 이런 핵심 관계에 내재하는 불균형에 맞닥드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일본의 우익민족주의자를 이 최신의 옷으로 감추고 있는 자유주의의 얄팍한 허울 밑에 무엇이 도사리고 이쓴지를 보게될 것이다.

결국 걱정스러운 것은 '자유주의적 역사기술' 집단이 표방하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반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분명 독단주의나 정통주의, 특히 국가의 이름으로 난무하는 모든 정통 입장보다 낫기 때문이다. 냉전체게 이후 핵심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있게 통합해낼 수 있는 그런 일본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강한 열망을 이런식으로 드러낸다고 해서 반드시 걱정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런 소망 자체야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진정 불안한 것은 자유주의와 합리주의하는 이름이 반자유주의적이고 반합리주의적인 사유방법을 가장하기 위하여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1930년대의 폭력과 불관용을 불안하게 떠올리게 만드는 정치방식, 자신들이 반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국가적'이며, '자학적'이라고 딱지를 매기면서 반세기전 군국주의의 가장 처참한 희생자인 바로 그 여성들을 다시 희생양으로 삼으려 드는 젗치방식이 20세기 후반 일본에서 이같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느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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