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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 자유주의 사관의 정체 4

뉴라이트 친일교과서가  나오고, 한나라당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일본 우익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객관적인 입장에 있다고 생각되는 호주국립대학 태평양학 연구학부 동아시아학과의 맥코맥(McCormack) 교수의 글을 옮겨 봅니다(일본 자본주의 사관의 정체, 1997년 '창작과 비평' 98호, 1997)

1. 자유주의적 역사기술과 올바른 역사
2. 위안부의 도전: 끔찍한 성범죄의 나라
3. 사람과 운동
4. 이해와 해석을 위하여 
5. 결론

4. 이해와 해석을 위하여

지난 몇년간 후지오까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운동은 전후 일본의 민족주의의 구조에 깊이 뿌리박고 있되 탈냉전 시기의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그리고 일본이 모든 면에서 초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지닌 전지구적 경제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상황에 맞추어 수정되고 개정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걸프전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에 머물면서 후지오까가 개인적인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 것이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자국의 이미지와 국력을 제대로 지켜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걷잡을 수 없는 수치를 느낀 것이나 모두 그의 세대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 세대는 역사에 무지하며, 또 관심도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일본의 범죄와 그 어두운 역사가 언급되고 ('힘들게 벌어들인' 일본 엔화를 배은망덕한 세계에 나눠주면서) 정부대변인이 최근 몇년 사이 우스꽝스럽게도 '사과외교'를 추진하느 일본의 상황을 굴욕으로 여기는 세대다. 또한 미국의 세련권 안에 (그리고 그 우산 밑에) 들어가면서 계속 저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그리고 짐짓 봐주는 듯하면서 또 일본을 공격하는 미국의 처사에 분노를 느끼는 그런 세대인 것이다.

자랑스럽고 순결하며, 영예로운 역사를 창조하자는 그들의 부르짖음은 강한 정서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원망은 일종의 '피해 의식'으로 볼 수 있다. 후지오까의 운동이 이런 피해의식을 적절히 활용하였기 때문에, 남들이 스스로 희생자라고 주장할 때, 사람들은 더욱 더 부개하게 되었다. 할머니들이 일본이 점령했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 정부를 고발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여자들의 주장이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따라서 일본정부에 대한 지나친 모욕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일본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되리라고 그들은 생각하였으며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일본을 파괴하기 위한 거대한 음모'라 여겼다. 이같은 적반하장의 역할 바꾸기에 따르면, 희생자인 여성들이 도리어 가해자가 되고 일본의 명예와 덕을 폭력적이고 위협적으로 해치는 음모꾼이 된다.

이들과 유럽 수정주의의 유비점은 명백하다. '위안부'와 난징 대학살을 신화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유태인 집단학살을 부인하는 것과 비슷하며, 두 댱우 모두 희생자가 가해자로 둔갑해 버린다. 가령 1980년 프랑스 문학도인 로베르 포리쏭(Robert Faurisson)의 말은 그 문맥만을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바꾸어 그대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히틀러가 가스실을 사용하고 유태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연 두드러지는 역사적인 거지살이다. 이 거짓말로 이득을 얻는 것은 주로 이스라엘과 세계 전역의 시온주의고, 그 주된 희생자는 독일군민들이다."

번영을 누리는 부유한 나라 일본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난문제는 이 같은 강도높은 원한의 감정, '피해의식', 순결과 수수 및 위안에의 갈망, 그리고 사람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역사'를 마치 그것이 역사의 임무인 양 구성하려는 의지다. 이런 담론의 집요한 주제는 오염으로 마치 진실을 부인할 때보다 치부를 드러낼 때 역사가 더 오염되는 것인 야 인식된다. 이 집단은 한 세대에 걸친 역사가들의 연구결과도 쉽게 무시한다. 때에 따라서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자신들은 그런 연구를 읽은 적도 없거니와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끼처럼 위안부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를 한다는 것은 도착증 환자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뻔뻔스럽게 선언하기도 한다.

일본의 비평가와 지식인들은 이 현상이 제기하는 문제에 매우 심각하게 접근하고 있다. 역사학자 나까무라 마사노리는 후지오까 현상을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서구화와 국수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근대사라는 맥락에서 보고 있다. 전후 50년인 오늘 그는 새롭고 긍정적인 일본의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젊은 층, 특히 역사를 모르는 채 이미지에 둘러싸여 독자적인 생각을 할 능력이 없이 성장한 젊은 층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또오 마나부가 보기에 후지오까와 그의 동료들은 '거품경제 이후, 오옴진리교 이후' 현상의 '일탈된 자기 중심적 민족주의'를 대표하며 이는 곧 (적어도 아직까지는)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안만 들여다보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기묘하게 왜곡된 민족주의였다. 정치학자 이시다 타께시는 이 현상이 곹 일본 지식인, 특히 (자신이 정년퇴임 때까지 몸담았던) 토오꼬오 대학의 지식인들이 일반적으로 당면한 위기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여긴다. 그는 '자유주의' 역사관이라는 발상을 한편으로 옹호하지만그러나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 역사관이란 실천적으로는 세계가 오로지 미일 관계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해석되는 전후 세계관을 극복하는 운동이자, 다양한 아시아적 주체와 '재일' 주체들을 바탕으로, 특히 사회적 약자와 희생자 등 퇴폐적인 공식 강단에서 무시해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의 자유주의는 올바른 역사관을 찾아내고 주입시키자는 후지오까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이시다가 한 비판은 제일 한국인 비평가 서경식도 제기하였다. 서경식은 후지오까의 명분이 수용되는 그 만큼 자신이 속한 재일동포 사회와 같은 일본 내 소수민족을 위한 공간이 줄어든다고 지적한다. 후지오까 현상을 보고 수 많은 일본 지식인이 느낀 두려움과 경악을 쿠니히로 마사오는 이렇게 표현한다. 지금 자신이 "일본식 파시즘의 도래"를 목격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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