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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삼성(특검)

조선일보의 삼성 차명계좌 옹호론

조선일보는 2008년 5월 12일자로 "[심층분석] 이건희 회장은 왜 4조5천억원대 차명계좌를 갖고 있었나"라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과 보도시점에 대해 몇 가지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1. 기사의 요지
(1) 삼성의 차명계좌 재산 대부분은 이병철 회장의 유산이다.
(2) 차명관리의 최초발단은 박정희 정권의 기업공개 유도정책이었다.
    (규제는 회피하면서, 국가정책에 순응하기 위해 차명으로 이병철 회장 지분을 보유)
(3)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차명으로 재산을 계속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
(4) 1990년대 적대적 M&A 위험이 높아져 차명 재산을 처분할 수 없었고,
(5) 이후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차명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2. 조선일보의 삼성 감싸기
조선일보는 '삼성은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제도 속에서 불가피하게 차명계좌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삼성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첫째, 삼성의 차명재산을 상속받은 유산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성특검이 삼성의 주장만을 100% 받아들여 상속재산으로 판단하고 기소조차 안했겠지만(기소여부는 확인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법원에서 조차 확정된 내용이 아닙니다(법원도 상속재산으로 판단하더라도 이를 믿을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또한 금감원의 판단도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진실여부를 떠나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내용을 범법자의 말만 믿고 진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행위는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법원이나 금감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언론의 공정보도 의무를 망각한 행태입니다.

둘재, 조선일보는 삼성이 차명계좌를 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두 삼성 외부에서 찾아주고 있습니다. 즉, 조선일보는 '삼성의 차명계좌는 삼성의 잘못이 아니며,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된 제도적 문제로서,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제도적 문제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법을 지키지 않은 주체는 삼성이었습니다. 좀 과도한 비유가 되겠지만 미치광이가 사람을 죽이고, 사회 때문에 자신이 미쳤다고 그 살인자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보도하는 것과 똑같은 행태입니다. 삼성의 위법행위를 명확히 설명해야만 하고, 일방적으로 옹호해서는 안됩니다.

3. 보도 시점의 의문
금감원장이 삼성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입을 연 직후에,
조선일보가 보도한 것 또한 의문입니다.

전국이 광우병 우려 속에 있던 지난 4월 30일 김종찬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증권의 (차명계좌 리스트를 분류작업해) 조만간 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5월 2일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차명 보유재산을 숨겨주기 위해 동원된 금융회사가 모두 10곳으로 확인되었고,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다음주부터 이들 금융회사들이 금융실명제법과 증권거래법 등 관련법을 위반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대대적인 검사에 벌일 방침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5월 4일에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4조5,000억원대 차명 자산에 대해 실명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융실명제법(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대 1조원이 넘는 과징금 및 벌칙성 세금을 물게 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금융기관에 대한 처벌 수위에 대한 기사는 아직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삼성과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는 시점입니다.

이런 와중에 느닷없이 조선일보가 총대를 메고 <심층분석>이라는 타이틀까지 걸고 삼성의 차명재산을 옹호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물론 까마귀 날자 배떨어지는 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배떨어지는 시점을 기가막히게 사용했기에 보도의 의도까지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4. 마치며
언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할 수도 있고, 비판의견을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먼저 보도하고, 비판의견을 뒤에 표현해야하며, 비판 또한 공익의 이익을 우선할 때에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삼성 차명재산과 같이 법원의 판결조차 확정되지 않은 불법행위를 보도할 경우에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였어야 합니다.
더구나 금감위의 행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사 보도는 자제했어야만 했습니다.

조선일보에게 삼성의 위법행위를 비판하는 기사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을 호도할 수 있는 기사는 쓰지 말아 주세요

< 삼성 차명재산이 상속재산이라는 삼성특검 결과에 대한 반박 기사,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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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 투성이 특검 수사…삼성 비자금 의혹, 불씨는 여전, 2008-04-28, 프레시안
- 삼성생명 차명주식 전부가 이병철 유산이라고?, 2008-04-24,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