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티스토리 툴바



2008/05/24 09:05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고지도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여기저기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에 관한 글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과학문화'(2008-04, vol. 127.) 오상학 교수(제주대 사범대학 지리교육학과)

1992년 미국에서는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지도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된 지도 가운데 서양의 많은 지도사학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한장의 세계지도가 있었다. 바로 1402년 조선에서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이 지도는 2년 뒤 1994년 간행된 <The History of Cartography> 시리즈의 아시아편 표지에 수록되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지도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하늘과 땅, 세계가 어우러지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란 말 그대로 하나로 어우러진 땅(혼일강리) 곧 세계를 그린 것으로 각국의 역대 도읍지를 같이 그린 지도이다. 지도에는 중앙에 중국이 포진하고 있고 동쪽으로 조선, 남쪽 바다에는 일본이 위치해 있으며 서쪽에는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유럽 대륙이 그려져 있다. 지금의 세계지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매우 실망할 것이다. 그려진 모습이 객관적 실재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 세계지도는 종교적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는 중세유럽의 세계지도(Mappa Mundi)와 근세의 해도(Portolano)가 결합된 형식의 지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다소 왜곡된 형상을 띠고는 있으나 당시의 세계지도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지도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지도 하단에 수록된 권근의 지문(誌文)을 보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두 장의 지도 즉,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청준의 '혼일강리도'를 기초로 하고, 최신의 조선지도와 일본지도를 결합, 편집하여 만든 세계지도이다. 이 가운데 '성교광피도'에는 중국 이외의 지역이 자세히 그려져 있고, '혼일강리도'는 중국 역대 왕조의 강역과 도읍이 상세히 수록된 지도이다. 따라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그려진 유럽, 아프리카 부분은 '성교광피도'의 것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택민의 '성교광피도'는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중국 원나라 때 이슬람 지도학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지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넓은 사라센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성지순례, 교역 등의 필요에서 지리학과 지도학이 발달했다. 지도학은 로마시대의 선진적인 톨레미 지도학을 계승하고 있었는데, 칼리프의 후원에 의해 톨레미의 저서들이 번역되었다. 알 이드리시(al-Idrish) 같은 학자는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설(地球設)을 기초로 세계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진적인 이슬람 지도학은 동서 문화 교류에 의해 중국사회로 전파되엇고, 중국에서 다시 이택민과 같은 학자에 의해 중국식 지도로 편집, 제작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수록된 유럽과 아프리카의 모습은 중국을 거쳐 들어온 이슬람 지도학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도의 아프리카 부분에 그려진 나일강의 모습과 지명들은 이슬람 지도학의 영향에 대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이슬람 지도학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는 세계관은 서로 다르다. 이슬람 지도학은 고대 그리이스, 로마의 지도학을 계승한 것으로 땅은 둥글다는 지구설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전통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천지관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일부의 이술람 지도에서 보이는 경위선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도의 형태도 원형이 아닌 사각형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아울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표현하고 있는 세계는 여전히 중화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 세계의 중심은 여전히 중국이고 조선은 중국문화를 계승한 소중화로 표상된다. 다만 16세기 이후 나타나는 경직된 대외 인식과는 달리 중화적 세계관에 기초하면서도 개방적으로 세계를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고, 그것이 지도에 반영되어 문화적으로 다른 세계까지 자세히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그 속에는 열리 세계를 지향하며 미지의 세계까지 품어 안았던 조선의 문화적 자부심이 한껏 녹아 있다. 또 대륙의 동단에 위치한 폐쇄적인 나라에서 탈피해 대륙과 해양으로 향한 정보망을 구축하여 한 조선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지극히 넓은 천하를 한 폭의 지도로 감상하며 국정을 설계하고자 했던 위정자의 포부와 여부가 스며 있기도 하다. 21세기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새삼스레 떠오르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混一疆理曆代國都之圖

1. 왜 만들었나?
조선 초기 수도 이전과 행정 구역의 개편, 그리고 압록강ㆍ두만강 유역 일대의 영토 회복과 주민 이주 등 일련의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선 왕조는 각 지역에 대한 정확한 지리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 초기부터 지도와 지리지의 편찬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불안정한 북방 영토 및 고려 말 이후 잦은 왜구의 침입 등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 지도의 제작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도 제작은 행정ㆍ국방상의 필요성 이 외에 조선 왕조의 국가적 권위와 왕권을 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즉, 중국 중심의 세계에 조선 왕조가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세계 지도를 통하여 보여줄 수 있었다.
조선은 세계 지도를 만들기 위해 우선 사신을 통하여 다른 나라의 지도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지도 제작에 조정의 중신들(좌정승과 우정승)이 직접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에서 세계 지도의 제작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사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 어떻게 만들었나?
조선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전통적인 중국의 세계 지도에는 중국과 주변 지역만 그려져 있을 뿐 유럽과 아프리카는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런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당시 알려진 세계가 모두 그려져 있다. 이 중 동남 아시아, 인도, 이슬람은 교류가 있었고, 또 그 곳에 다녀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럽과 아프리카는 교류도 없었고 가 본 사람도 없었는데 어떻게 100여 개의 유럽 지명과 35개의 아프리카 지명을 지도에 기재할 수 있었을까? 이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 때 참조한 지도들을 통하여 추리할 수 있다.

지도를 만드는 데 참여한 권근의 발문에 의하면, 이 지도는 중국에서 들여온 『혼일강리도』와『성교광피도』를 좌정승 김사형과 우정승 이무, 검상 이회가 검토한 후 합쳐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교광피도에는 요수(遼水, 중국의 랴오허) 동쪽과 우리나라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한 지도를 첨부하여 새로운 지도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이택민의 성교광피도에서 아랍 지역을, 청준의 혼일강리도에서 중국을, 이회의 팔도지도와 동서가 남북으로 된 행기도(行基圖)에서 각각 우리나라와 일본을 참조한 것이다. 따라서 이 지도는 아랍ㆍ중국ㆍ한국ㆍ일본 지도가 합쳐져서 편집된 세계 지도이며,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명은 성교광피도에서 인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신대륙이 빠져 있는데, 이는 이 지도가 신대륙 발견(1492)보다 무려 90년이나 앞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 얼마만큼 뛰어난가?
전체적인 지도의 모습을 보면 지도 가운데에 중국이 있고, 중국 오른편에는 조선과 일본이, 외편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이 자리납고 있다. 중국과 조선은 매우 정확하며, 하천과 도서를 자세히 기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강은 매우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 중국 남부 지방은 마치 수많은 섬처럼 보인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황하(黃河)는 다른 강들과 달리 노란색으로 표현되었으며, 만리 장성도 뚜렷이 나타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줄기가 비교적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 두 나라의 지형적 특징을 비교할 수 있다. 일본은 비록 방위는 틀리지만 혼슈(本州)와 큐슈(九州)의 형태가 비교적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한반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크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한편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는 실제보다 훨씬 작게 그려져 있지만 모양은 비슷하다. 특히 아프리카의 가운데에는 사하라 사막(黃沙)이 그려져 있고, 북쪽으로 흐르는 나일 강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지중해는 바다가 아닌 강으로 표현되었다. 이에 비해 인도와 인도차이나 지역은 오류가 심하다. 인도는 반도가 아니라 단순한 해안선으로 연결된 육지처럼 표현 되었고,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은 남쪽 바다 위의 섬들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일부 지역들은 너무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도는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당시에 그려진 세계 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도임에 틀림없다.

지도에 숨겨진 것들, 개방적이고 과학적인 조선 창업기의 문화적 배경 아래에서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이 지도는 동ㆍ서양 간의 문화 교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지도는 인도가 반도로 표현되지 않은 점과 나일 강의 수로 형태로 보다 톨레미(Ptolemy)식 지도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톨레미식 지도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지도가 원나라에 전해지고, 한역(漢譯)된 원나라의 전도가 조선으로 전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지도에 나타난 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 지역은 지명은 중세 이슬람의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만든 세계 지도에 나오는 지명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또 이 지도는 당시 사람들의 지리적 사고를 보여 준다. 이 지도에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4배정도 크게 그려져 있으며,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보다도 더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이 지도의 가운데에 놓여 세계 육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보아 중화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한편 우리 나라와 중국과의 거리는 매우 가깝게 그린 반면, 일본과의 거리는 매우 멀게 표현했고, 도서 방향의 일본을 남북 방향으로 나타내었다. 즉, 우리나라에 중요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중국은 크고 가깝게 그린 것이고, 중요하지 않고 관심도 적은 일본은 멀고 작게 나타낸 것이다. 현대인들도 이와 같은 지리적 사고를 종종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적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당시에는 가장 뛰어난 세계 지도였으며, 현재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 유산이다.그러나 이러한 세계 지도 제작의 전통이 이후 계승되지 못하여 참으로 안타깝다.
<지리교사 모임 '지평', "지리로 보는 세상"에서>
'충주 전통문화회'의 다음 카페에서 퍼 왔습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엠파스 백과사전에서)

지도 하단에 권근(權近이 쓴 발문과 ≪양촌집 陽村集≫(권22, 歷代帝王混一疆理圖誌)에 의하면 이택민(李澤民)의 〈성교광피도 聲敎廣被圖〉와 천태승(天台僧)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 混一疆理圖〉를 중국에서 들여와 이 지도에 우리 나라와 일본을 추가하여 새로 편집한 지도이다.

발문에 〈성교광피도〉는 지도로서 매우 상세하고, 〈혼일강리도〉는 국도연혁이 상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이 세계지도의 윤곽은 〈성교광피도〉를 따랐고, 지도 상단의 역대제왕국도(歷代帝王國都)와 성도(省都)는 〈혼일강리도〉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옛 세계지도는 대부분의 지도가 우리 나라와 일본은 자세하게 그리지 않거나 빠뜨리고 있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와 일본 부분을 이회가 보완하여 새로 편집한 것이다.

우리 나라 지도는 1402년에 의정부에서 본국 지도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1482년(성종 13) 2월에 양성지(梁誠之)의 상주문에 조선 국초에 이회의 〈팔도지도 八道地圖〉가 있다. 그러므로 이 지도의 조선도는 이회의 〈팔도지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세종실록≫ 권80 세종 20년(1438) 2월조에 보면 박돈지(朴敦之)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1401년에 일본 지도를 가지고 돌아온 기록이 있다. 따라서, 일본 지도는 박돈지가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의 일본도는 일본의 북동부 지방이 돌기(突起)로 표현된 행기도(行基圖)의 일종으로 판명되며 방위는 서쪽이 북쪽으로 잘못 그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지도는 압록강의 상류와 두만강의 유로가 부정확하지만 서해안과 동해안의 해안선이 현재의 지도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하계망과 산계(山系)가 동북부 지방을 제외하면 매우 정확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지도는 전체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몇 배나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전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이고 당시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는 이회의 〈팔도지도〉도 이 지도의 우리 나라 부분을 통해서 그 면모를 알 수 있다. 이 지도의 원본은 전하여지는 것이 없고, 사본이 일본 경도에 있는 류코쿠대학(龍谷大學) 도서관에 전하여지고 있다.

지도에 표시된 우리 나라 지명을 보면 고무창(古茂昌)·고여연(古閭延)·고우예(古虞芮)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폐군(廢郡)이 된 1455년(세조 1) 이후의 지도임을 알 수 있고, 또 같은 폐4군(廢四郡)이면서도 1459년에 폐군된 자성(慈城)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1459년 이전에 모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에 류코쿠대학 지도와 거의 같은 지도가 또 일본 구주(九州)의 혼코사(本光寺)에서 발견되었다. 이 지도의 크기는 류코쿠대학본보다 약간 크며 세로 147㎝, 가로 163㎝이고 류코쿠대학본이 견지(絹地)인데 혼코사본은 한지(漢紙)에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유사본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이 지도들이 우리 나라에는 하나도 없고 일본에 모두 있는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또는 일제 강점기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韓國古地圖(韓國圖書館學硏究會, 1977)
≪참고문헌≫ 東漸せる中世イステム世界圖(高橋正, 龍谷大學論集 374, 1963)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조선 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 之圖]
(다음 백과사전에서)

조선초 1402년(태종 2)에
권근(權近)·김사형(金士衡)·이무(李茂)·이회(李薈) 등이 제작한 세계지도.

세로 158.5㎝, 가로 168.0㎝. 비단 바탕에 그린 채색 필사본. 원본은 일본 교토[京都]의 류고쿠대학[龍谷大學]에 있으며, 규슈[九州] 시마바라 시[島原市] 혼코지[本光寺]에도 유사한 본이 있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일본, 서쪽으로는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당시 알고 있던 세계인 구대륙 전체를 그린 사실적이고 정확한 지도이다. 지도 하단에 있는 양촌(陽村) 권근이 쓴 발문에 의하면, 중국에서 만든 〈성교광피도 聲敎廣被圖〉·〈혼일강리도 混一疆理圖〉, 우리나라·일본의 지도를 합하여 새로 제작했다고 기록했다. 이 지도는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고지도임은 물론, 신대륙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이전의 지도로서 세계적으로 훌륭한 세계지도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조선 초기의 지도제작술의 수준과 국가의 지도에 대한 지대한 관심,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공간 인식을 알려주는 자료로도 의의가 크다. 규장각에는 류고쿠대학 소장본의 모사본이 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