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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왕국에서 입헌군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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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9일은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국민 모두 투표에 참여하자는 의미에서 최근 부탄의 입헌군주제 이행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도 이번에 부탄이 민주화를 위해 10여년을 준비해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삼 제가 가지고 있는 투표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가벼운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글이 주저리 주저리 길어졌습니다)

0. 부탄은 어떤 나라? : 간략한 소개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부탄은 경제발전보다는 환경과 전통문화 보전을 중시하는 균형발전을 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며, 국정지표도 국내총생산(GDP)보다는 ‘국민 행복지수’(GNH)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록 국민소득(1200달러)는 낮지만 ‘행복지수’로는 세계 8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탄은 1999년에 TV, 2000년에 인터넷을 도입했을 정도로 폐쇄된 불교국가이며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가 전체에서 흡연을 금지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편, 자본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전체 인구의 20%에 이르는 빈곤층, 젊은층의 실업률 상승, 강제 추방되어 부탄으로 넘어 온 네팔 난민 등 해결해야 할 정치, 경제적 과제도 많은 국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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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화를 위한 부탄 국왕의 결단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의 대혁명, 우리나라의 광주민주화 운동, 87년 민주화 항쟁처럼 민주화는 대체로 아래로 부터의 요구에 의해 진행되는데, 부탄의 민주화는 반대로 국왕의 주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왕추크 왕조는 1907년 내전을 종식시키고 부탄왕국을 통일한 왕조였는데..지그메 싱예 왕추크 국왕은 10여년 동안 왕권을 약화시키며 민주주의를 도입하였습니다.

- 2001년 지그메 싱게 왕축 국왕은 일상적인 행정권을 각료위원회에 이양하였고,
- 2004년에는 32개 조로 구성된 헌법을 국민에게 공개하여 토론을 유도하였습니다.
   부탄 헌법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헌법초안은 양원제를 채택하며, 국왕은 국가원수가
   되지만 의회의 2/3 이상 찬성으로 탄핵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고 합니다.
- 2005년 4대 국왕인 '지그메 싱예 왕추크'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이양
   하겠다고 전격 발표하였습니다.
- 2006년 말에는 대졸자만 총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한 헌법 초안이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부탄인구는 60만, 문자해독률은 42%, 대학 졸업자는 1만1000여명 이라고 합니다)
- 2007년에는 두차례의 모의 투표 실시하였고
- 2007년 말 국민투표로 헌법을 확정하고 국왕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한 왕실칙령
  (1953년 제정)을 헌법이 대체하고, 국왕은 상징적 지위로 물러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실행이 되었는지 확인은 못했습니다
- 2008년 결국 지그메 케사르 왕추크 5대 국왕은 국민들을 설득하여 선거를 치르고
   입헌군주제로 완전 이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국왕의 결단을 전문가들은 "아시아의 강대국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과거처럼 산속으로 숨어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판단에서 비롯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부탄은 2008년 중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2. 민주주의로의 첫걸음 ; 모의투표
부탄의 입헌군주제로의 이행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모의투표였습니다.
그동안 부탄에는 정당은 물론 선거도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두 차례의 모의투표였습니다.
투표를 통해 국민들에게 민주적 절차를 연습시키겠다는 의도였습니다.

2007년 4월 첫번째 모의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
청색, 녹색, 적색, 황색 등 가공의 정당을 색으로 표시하고, 선호도를 묻는 방식으로
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각각의 색깔은 나름의 뜻이 있는데, 청색당은 산업개발을, 녹색당은 환경보호를,
적색당은 자유롭고 공정한 정부를, 황색당은 전통과 문화 그리고 가치의 보존을 통한 국민적 단합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색깔 뒤에 `드루크(Druk)'라는 단어를 붙였는데(예를 들면 청색드루크당....)
드루크(Druk)는 '천둥소리를 내는 용'이란 의미로 부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1차 모의투표는 47개 선거구 진행되었으며, 유권자 40만명 중 12만 4747명이 참가하여 투표율은 약 30% 정도였습니다.
모의투표 개표 결과 4개 정당 가운데 '전통과 문화, 가치의 유지를 통해 국가의 일체성을 보존한다'는 강령을 내세운 황색정당이 44%의 득표율로 승리하였고, 그 다음으로적색과 청색, 녹색당 순으로 지지율이 나타났습니다.

국왕의 의욕적인 추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적었고,
또한 1차 모의선거에서 왕실의 통치철학을 대표하는 황색당이 승리했 듯이
부탄의 국민들은 민주주의보다 왕정을 선호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2007년 5월 2차 모의투표가 있었습니다. 2차 투표는 1차투표의 상위 2개 정당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시큰둥 했습니다. 왕정체제 하에서 국가의 모든 분야가 성장하고 번영했다고 생각하여 국민들은 왕정의 유지를 원하였습니다.
또한 정당등록 시한인 2007년 7월까지 등록 정당은 국민민주당(PDP)과 부탄국민통일당(BPUP) 2개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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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속되는 부탄의 민주화 : 총선 실시
국민들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부탄 최초의 선거 일정은 발표되었습니다.
“약 40만명의 유권자가 참여하게 될 이번 총선은, 모든 정당 대상 1차투표를 2월,
 최다득표한 2개 정당 대상 결선투표를 3월에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하지만 남아시아의 다른 ‘민주’ 국가들이 겪는 정치적 혼란을 목격한 부탄국인들은
여전히  회의적 목소리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7년 12월 31일
238년 왕정을 마감하는 부탄왕국의 첫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15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하였습니다.

부탄이 민주화 실험의 첫 단계로 구성할 상원 의석은 모두 25석이었지만
후보가 없는 선거구가 발생하는 등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15명만 선출하였습니다.
(나머지 상원의원은 1월 말에 다시 선출하겠다고 하였는데...확인은 못했습니다)

난생 처음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 나선 부탄 주민들은 종교나 집안 대소사때나 꺼내 입던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새벽부터 투표소로 향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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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투표라서 혼란도 있었는데
한 투표소에서는 20여명의 주민들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착오로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없게 됐다며 거세게 항의하는 소동도 있었고, 쿤장 왕디 선관위원장은 "일부 주민들이 투표용지 신청을 너무 늦게 해 자격이 주어지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투표과정 뿐만 아니라 43명 후보들의 면면도 이채로와 28살의 교사와 25살의 유명 코미디언이 접전을 치르기도 했습니다.이들은 상원의원 후보는 후보등록 자격인 '대학졸업'이라는 학력 제한 조항을 통과한 엘리트들입니다. 

또한 지난 1991년 네팔에서 정치적 차별을 받다 쫓겨난 뒤 부탄 시민권을 거부해온 수만명의 네팔 난민들은 선거권을 부여받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4. 부탄 최초의 하원의원 선거

부탄은 2008년 3월 24일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부터 전국 180여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하원의원 투표에 돌입하였습니다.

전체 63만명의 국민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31만8천여명이 첫 총선에 유권자로 선거에 참여했고, 왕족과 불교 승려들은 선거 중립 차원에서 투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투표율은 79%으며, 무사히 하원의원 47명을 선출하여 평화적으로 입헌 군주국으로 이행하였습니다. 선거 결과 친왕정 성향이 더 강한 부탄평화번영당(DPT)이 하원 47석 가운데 44석을 차지했고, 국민민주당(PDP)은 3석에 머물렀습니다.

두 당의 당수 모두 왕정에서 총리를 지낸데다 정책 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선거의 승패보다는 투표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고,
영국 유학파 출신의 지그메 케사르 왕추크 국왕도 "이번 총선은 2개 정당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치르는 선거와 이를 통해 건설하는 민주주의는 여러 세대의 조상들이 희생을 통해 일궈낸 성과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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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와 출마자 모두 국왕의 뜻에 따라 선거에 참여했지만, 아직도
부탄 국민 다수는 선거를 통한 민주화보다는 왕정에 더 애착을 보인다고 합니다.

민주화를 했다가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부를 두게 된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네팔처럼 이되지 않을까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고 하지만

10여년 동안 노력해온 부탄국왕들의 의지, 부탄 자신들만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풍토, 점차 높아질 부탄 국민들의 민주화 의식 등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부탄 민주주주의는 계속 발전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 부탄국왕, 민주헌법 초안 공개, 2005-03-28, 연합뉴스
- 부탄 헌법 초안, 대졸자만 총선출마 가능?, 2006-12-26, INTERNATIONAL
- 부탄, 민주화 일정 발표, 2007-07-03, 한겨레
- 부탄, 민주제 이행연습 모의총선 실시, 2007-04-23, 뉴시스
- '은둔 왕국' 부탄 왕정마감 민주화 실험, 2008-01-01, 연합뉴스
- '은둔의 왕국' 부탄 첫 총선 투표 개시, 2008-03-24, 연합뉴스
- 왕명에 의한 민주주의 부탄의 실험 성공할까, 2008-03-24, 한겨레